글라라의 집 성주간 안내

+평화를 빕니다!

글라라의 집 성주간 전례시간을 알려드립니다.

어르신 가족 및 우리 요양원의 자원봉사자 등
우리 어르신들과 함께 성주간을 보내실 분들을 초대합니다.

* 부활 판공성사
– 2011년 4월 11일 월요일 13:00 (신원회 정에밀리아노 신부님)

* 성삼일전례
– 2011년 4월 21일 18:10 성목요일 만찬식사, 20:00 미사 (프란치스코회 도분도 신부님)
– 2011년 4월 22일 15:00 십자가의 길, 20:00 성금요일 전례 (프란치스코회 도분도 신부님)
– 2011년 4월 23일 20:00 부활성야미사 (프란치스코회 도분도신부님)

* 부활대축일미사
– 2011년 4월 24일 월요일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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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나르도다빈치 <최후의 만찬> 작품해설 :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는 말이 떨어지고 난 후 식탁에서 벌어진 열두 제자의 반응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식당에 그려져 있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

“아니 그럴리가요?”“설마 저는 아니겠지요?”

놀라움, 의심, 두려움, 걱정…… 제자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을 것이다. 신약 성경을 읽어나가다 보면 제자들은 각기 다른 개성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다. 토마스는 의심이 많았고, 베드로는 성질이 불 같았으며, 마태오는 침착하고 지적이었다. 다 빈치는 이들이 각자의 기질에 따라 예수가 위의 말씀을 한 후 어떻게 반응하였는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는 열두 제자를 그리기 위해 인간의 다양한 얼굴 생김새와 표정을 관찰하였다.

“얼굴의 굴곡이 심하고 깊은 사람은 동물적이고 본능적이며, 이유 없이 화를 잘 낸다.”고 쓴 그의 비망록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두개골 형태에 따라 관상이 달라지며 이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 정해진다는 사실을 해부학 실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당시에 해부학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사람이 바로 다 빈치다. 그는 두개골을 면밀히 연구한 후 그 형태에 따라 제자들의 생김새를 결정했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거기에 맞는 반응을 얼굴 표정이나 몸짓으로 표현했다. 이를 위해 성경을 읽고 제자들의 성격을 일일이 파악한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사도들의 모습을 보면 성 토마스는 예수의 바로 오른편에 앉아서 손가락을 위로 가리키며 반문하고 있다.

“그게 누굴까?”

‘의심하는 성 토마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의심이 많아 부활한 예수를 보고도 믿지 못하고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보고서야 믿은 토마스다.

열두 제자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인 요한과 베드로 그리고 예수를 배반한 유다는 예수의 왼편에 함께 그려졌다. 이들 중 가장 오른편에 있는 사람이 요한이다. 다 빈치 이전의 그림을 보면 요한은 자주 예수님의 품에 안겨있는데 이는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는 성경 구절에 따른 것이다.

성격이 불 같은 베드로는 자신의 궁금증을 풀려는 듯 요한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다. 성격이 급한 그는 스승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칼을 들고 있는데 이는 예수님이 체포될 당시 대제사장 종의 귀를 자를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자 그의 불 같은 성격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유다는 열두 제자의 회계 담당이었으므로 돈 주머니를 들고 있는데 이는 또한 그가 은전 30냥에 스승을 팔아먹으리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다 빈치 이전의 화가들이 <최후의 만찬>에서 유다를 식탁 건너편에 혼자 앉게 하는 방식으로 그를 구별하던 것과 달리 다 빈치는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식탁에 앉게 하였다. 이는 성서의 말씀을 정확히 해석하여 아직 그가 죄인임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을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 빈치는 1495년부터 2년에 걸쳐 이 그림을 그렸다. <최후의 만찬>은 다른 벽화들에 비해 상태가 좋지 않다. 이는 그가 당시 벽화를 그릴 때 젖은 벽에 안료를 칠하던 프레스코 기법을 쓰지 않고 마른 벽에 직접 템페라 물감과 유화 물감으로 그렸기 때문이며 16세기 초반부터 그림의 상태가 이미 나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한 작가의 도전 정신의 결과라 해야 할 것이다.

다 빈치가 프레스코화로 그리지 않은 이유는 하루치 분량만큼만 그려야 하는 프레스코 기법이 그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머릿속에서 구상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작업 자체는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기 작가인 바사리는 다 빈치가 며칠씩이나 “그림에는 손도 대지 않고 벽 앞에 앉아서 명상에 잠겨있었다.”고 쓰고 있다.

이 그림은 르네상스 회화의 특징인 수학적 원근법의 결정판이기도 하다. 그림이 그려진 벽면은 마치 실제 벽면이 이어지는 것처럼 환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원근법의 소실점은 바로 예수의 머리다. 이 그림에서는 또한 사도들과 그리스도의 후광이 보이지 않는다. 예수의 후광을 대신하는 것은 유난히 밝은 창이다. 과학적 사고에 바탕을 두는 다 빈치에게는 후광 역시 실존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듯 모든 것이 화가에 의해 세심하게 고안되고 연출되었다.

월간미술

글 고종희/미술사학자, 한양여자대학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1983년 이탈리아 피사대학교 문과대학 미술사학과에 입학하여 예술사를 전공하였고 1993년 동 대학에서 르네상스 회화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명화로 읽는 성서』(한길아트, 2000), 『이탈리아 오래된 도시로 미술여행을 떠나다』(한길사, 2009)가 있다. 문화일보에 ??고종희 교수의 이탈리아 예술산책??을 연재한 바 있고, 지금은 가톨릭 신문에 『명화 속 불멸의 성 인들』을 연재하고 있다. 주 관심 분야는 르네상스 회화 및 그리스도교 성화이며, 한양여자대학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http://blog.naver.com/bella4040